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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에피쿠로스

by aqua2 2014. 5. 17.


   '에피쿠로스'에 대해서는 위키에서 간단히 알아보고 옵시다.



  에피쿠로스는 고대 서양의 헬레니즘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쾌락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사람입니다. 쾌락주의라는 이름 아래 여러가지 철학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에피쿠로스는 가장 수준이 높은 쾌락주의를 주장했지요. 하지만, '말'이라는 것이 항상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까닭에 '쾌락'이라는 말이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오해하게 만들게 합니다.

  '쾌락'이란 말에는 먼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즐겨라, 내일이면 죽을 것이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을 주곤 합니다. 그래서 '쾌락'은 '방탕함', '무절제함'등과 같은 뜻으로 쓰이곤 합니다. 하지만, '쾌락'은 본래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쾌락'의 다른 말은 '즐거움'

  '쾌락'을 '즐거움'이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면 '쾌락주의'의 본질에 매우 가까이 다가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쾌락주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방탕하지도, 무절제하지도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쾌락주의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쾌락'이기 때문에 '쾌락주의'인 것이지 '방탕주의'는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쾌락을 위한 지식을 추구하라.'

  쾌락주의자들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으로 '지식'을 요구하였습니다. 무식하다면, 무엇이 진정 자신의 즐거움인지 혹은 무엇이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단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달콤한 음료수를 마시고 싶은 철수 앞에 두 잔의 검은 액체가 투명한 컵에 담겨 있다고 합시다. 하나는 콜라이고, 다른 하나는 간장입니다. 이 때, 철수가 달콤한 콜라를 마시고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짜 콜라인지를 알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바로 무엇이 콜라인지 아니면 간장인지를 알아내는 지식이 철수의 즐거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쾌락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되면 인간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쾌락주의자들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여기서 끝납니다. 최초의 쾌락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 '아리스티포스'라는 사람은 '순간적인 쾌락의 끊임없는 추구'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인 '헤게시아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너무나 작은 쾌락들이 가끔 있을 뿐이므로, 차라리 죽는 것이 더 쾌락적이다.'라고 생각하여 끝내 자살하고 맙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달랐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목적으로서 쾌락은 추구해야 할 것이지만, 쾌락은 영원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쾌락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됩니다.



'쾌락은 결핍의 해소.'

  다른 말로 하자면, '즐거움은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쾌락주의와 의미가 조금 다른 듯 합니다. 오히려 '금욕주의'의 자기만족에 더 가까운 '절욕주의'의 모습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에피쿠로스의 즐거움입니다. 에피쿠로스는 그 어떤 순간적인 만족도 진정한 쾌락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덜 부족한 것'이 진정한 쾌락이라고 주장합니다. 소극적이지요. 맞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점은 부족하지 않은 것이 충분한 것이라고 해야 할 만큼 불안한 시대였습니다. 당시는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진행하던 시기라서 그리스부터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까지 하루도 안심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생활 따위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지요. 바로 이 때가 에피쿠로스가 살았던 시대입니다. 자연히 시대적 상황은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금욕주의적인 쾌락주의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적은 음식에 만족하라.'

  에피쿠로스의 저서와 편지에 보면, 그는 빵과, 콩, 물 정도의 소박한 음식에 만족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만 처지가 나아져서 좋은 음식을 먹을 때도 더 기쁠 수 있고, 다시 처지가 나빠져서 좋지 못한 음식을 먹을 때도 덜 실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생각에 여러분은 '이 사람이 정말 쾌락주의자인가?'라고 되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쾌락은 꽤 넓은 범위가 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도 그 한 부분이지요. 그 중에서도 필요함 보다 욕구를 줄이는 방식으로 상대적 만족을 얻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마치 경제학의 재화의 분배와도 비슷하지요. 그리고 동양의 노자사상에서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면한다.'라는 내용과도 비슷합니다.




'은둔하라. 정치를 멀리하고, 가까운 이웃과 벗하라.'

  당연히 시대적으로 혼란했기 때문에, 누군가 벼슬을 하고, 큰 세력을 이끌게 되면 부귀와 권세를 누리기에 좋은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쾌락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제한된 부귀를 빼앗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온통 적이지요.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정치와 사회활동에 대해서 일체 참여하지 말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원(Garden)'이라는 작은 공동체를 만듭니다. 여기서 평생동안 뜻을 같이 하는 친구와 이웃,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쾌락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에피쿠로스의 은둔이자, 한편으로는 새로운 공동체이지요.




'아타락시아'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한마디로 하자면 바로 '아타락시아'입니다. 풀어 쓰자면,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코 제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가져서는 안되고, 남에게 미움을 사면 안됩니다. 당연히 정치같은 데 끼어서는 안되고, 남과 다투어서도 안되지요.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면 자연히 '아타락시아'의 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목숨을 보존할 수 있고, 벗과 함께 즐겁게 평생을 쾌락 속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원자론과 자유의지'

  이 때 가장 유명했던 철학은 '스토아 철학'입니다. 그리스의 '제논'이 창시한 사상으로 '스토아'라는 울긋불긋한 회랑에서 강의했기 때문에 이름붙여진 철학입니다. 이 사상은 '금욕'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그래서 '쾌락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라고 주장하거나,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고 '개'처럼 최소한의 필요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세상 모든 일은 이미 어떤 원리에 의해서 정해져 있으므로, 이성으로 그 원리를 알고 충실해야만 한다.'라는 운명론적인 주장을 합니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지요. 정해진 원리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끌어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세상 모든 것의 기본 구성요소는 원자.'라는 주장으로 유명하지요. 그리고 그 원자들이 하늘에서 똑같이 땅으로 떨어지는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낙하운동을 통해서 만물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이론을 변형시킵니다.




'궤도의 이탈이 자유의지를 가져온다.'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낙하운동이 수직으로 그대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다보면, 어떤 것은 조금 빗나갈 수도 있고 그러면 부딪혀서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정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우연이 없는 세상에는 그 어떤 자유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유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지요. 자유로운 인간이라면 점심을 먹을 때,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피쿠로스는 바로 원자의 운동에 예외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원자로 이루어진 인간 역시도 자유가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원자론과 감각에 대하여'

  원자론과 이어진 독특한 그의 이론은 바로 '감각'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외부 사물을 알아내는 방법에 바로 원자론을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두가지 방식으로 인식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감각기관, 다른 하나는 영혼입니다. 물론 감각기관과 영혼도 모두 원자로 만들어졌습니다만, 세상 모든 사물이 이미 만들어지고 난 뒤에는 원자가 미세하게 밖으로 빠져나와 감각기관과 영혼에 닿는다고 합니다. 이 때 거칠고 큰 사물들은 우리의 눈,코,입,귀 등의 감각기관으로 인식하게 되고, 정신과 같은 미세한 것들은 영혼으로 바로 인식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에 그런 걸 어떻게 증명하기보다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 주장한 것이지만요. 이러한 인식론을 바탕으로, 에피쿠로스는 인류의 영원한 과제 중 하나인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말이지요. 감각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죽음이 고통스럽다고 알려져 있는데, 과연 우리들 중에서 죽음을 느껴본 사람이 있습니까? 결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죽기 전에 아픈 느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죽음 때문에 아프다라고 할 수는 없지요. 만약에 죽은 뒤에도 영혼이 계속 살아있다면, 죽음 때문에 아파서 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에피쿠로스는 죽음이란 몸과 영혼의 원자가 흩어지는 것이고, 원자가 흩어지면 감각하지 못하므로, 죽음이란 결코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얼마나 명쾌한 설명입니까?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고통스럽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와 마찬가지로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을 주장합니다.




'신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신은 인간세상에 관심이 없다.'

  여기서 에피쿠로스의 삶의 철학이 그대로 나옵니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론을 믿는 사람이고, 원자론은 '유물론'과 연관됩니다. 다른말로 하자면, 물질이 세상의 바탕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신'과 같이 만지고, 말하고, 냄새맡고, 보이지 않는 존재는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에피쿠로스는 강력하게 '무신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만, 그의 글에서는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처세를 아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싸워서 좋을 것이 없고, 그 원한이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두려워 했으므로, 둘러서 말합니다. '신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위대하고 완벽해서, 불완전하고 미천한 인간의 세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말하면, 유신론자에게는 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자신의 철학과 신념은 지킬 수 있는 것이지요.


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없고 의사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 에피쿠로스 -




'자유의지를 믿고, 소박한 즐거움에 만족한 철학자'

  이상으로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에피쿠로스는 쾌락(즐거움)주의자인데,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서 스스로 즐거움을 추구할 능력이 있고,  쾌락은 '더'를 추구하기보다 '부족함을 면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 쉽죠? 혹시 더 알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쾌락'이라는 에피쿠로스와 관련된 내용을 묶은 책이 있으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전해지는 내용이 워낙 적다보니 다 모아봐야 손바닥만한 책에 다 들어갑니다. 그밖에 에피쿠로스의 계승자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질에 대하여'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 두 권이면 에피쿠로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내용이 어렵지 않고, 일기같이 되어 있으니 쉽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이 즐거운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출처) http://gomeisa.tistory.com/18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가족, 사랑, 금전, 건강 등등...

에피쿠로스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내가 했던 생각과 비슷함을 느꼈다..

물론 나는 말과 글에 대한 재주가 없다...

이런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재주가 없다...

철학자의 글을 보니 내 생각이 정리되는 듯하다...




안분지족, 안빈락도



2015년 5월 12일 

아잔차 스님의 오두막이란 책을 보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행복도 고통도 일시적이라고 나와있다

행복도 잠깐 지나가는 것이며 여기에 빠지면 탐닉이 된다는...

중도를 지키며 나아가는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2015년 8월 27일 

지금 보니 에피쿠로스의 생각은 아닌것 같다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마음의 변화는 계속 되는구나.. 

신기하다...

(참! 다시 느낀건데 

정말 안다는 것과 깨닫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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